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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꿈의 모양을 생각해본다.


없지만 있는 꿈의 모양에 대해.


완성된 꿈의 모양에 대해.



우리는 자주, 꿈을 희망으로 비추지만 정말 그렇기만 한 걸까. 꿈을 비출 때 드리워지는 그림자도 그만큼 밝고 명랑한 걸까. 시집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에 새겨진 서른다섯 개의 꿈을 쫓다 문득 생각해본다.





얼마 전, 우연히 기사를 통해 이 시집을 알게 되었다. 네팔 이주노동자 서른다섯 명의 시 69편이 약 3년이라는 긴 시간을 거쳐 한 권의 시집으로 완성. 궁금해져 더 찾아보니 마침 텀블벅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었다. 텀블벅은 창작 콘텐츠의 크라우드 펀딩 및 후원을 진행하는 플랫폼으로 응원하고 싶은 콘텐츠가 많아 종종 펀딩에 참여하곤 했는데, 이 시집 역시 그 프로젝트를 통해 출간 예정이었던 것. 마감까지 며칠 남지 않았기에 서둘러 후원해 지난주에 받아볼 수 있었다.





조선소에서 용접공으로 일하고 있는 수레스싱 썸바항페 Sureshsing Sambahangphe 씨에게 꿈은,


팔자는 다만 핑계일 뿐이다

꿈들이 삶을 죽이는 것이다

그리하여 꿈은 살인자가 되고

그런 꿈을 나도 한국에서 꾸고 있다


(그의 시, <꿈> 중에서)


젊음을 불태워서

꿈의 조각들을 쌓아가고 있다


(그의 시, <나는 배를 만들고 있다> 중에서)


이런 모양을 하고 있고,





자동차 부품 공장의 노동자 서로즈 서르버하라 Saroj Sarbahara 씨에게 꿈을 찾아 떠나온 이 도시는,


사람이 만든 기계와

기계가 만든 사람들이

서로 부딪히다가

저녁에는 자신이 살아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구나

친구야 여기는 기계의 도시란다

여기는 사람이 기계를 작동시키지 않고

기계가 사람을 작동시킨다


(그의 시, <기계> 중에서)


이런 모습이다.





네팔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에어컨 공장의 노동자로 살아가는 디빠 메와항 라이 Deepa Mewahang Rai 씨는 꿈에 닿기 위해


시간이

억지 미소를 띠고

자신의 얼굴을 찡그리고 있네

꿈의 장례식장으로 가고 있는

외로운 나



마침내

그대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도착하는 곳은

다만 무일 뿐.

그래도

걷고 있다, 목적지를 향해 걷고 있는

외로운 나!


(그녀의 시, <목적지> 중에서)


오늘도 이런 기약 없는 길을 걷는다.





그리고 너무나 아픈 시.


고용



러메스 사연 Ramesh Sayan




나는 어느 회사의 직원입니다

우리 사장님은 이 도시에서 수많은

굶주림과 결핍의 신입니다


어느 날 사장님께 말했지요

사장님, 당신은 내 굶주림의 신이시며

내 삶은 당신의 은덕입니다

그래서 생일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어요

휴가를 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내 덕분에 너는 오래 살 거야

이번에는 일이 많다

내년에 생일을 잘 보내도록 해라

나는 네라고 말했어요


어느 날 다시 사장님께 부탁을 했지요

사장님, 당신은 굶주림의 신의 신이십니다

당신의 자비로 집을 꾸며주세요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저에게 휴가를 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좋은 날들은 또 올 거야

이번에는 일이 많다

다른 길일에 결혼하도록 해라

나는 다시 네라고 말했어요


하루는 삶에 너무도 지쳐서

내가 말했어요

사장님, 당신은 내 굶주림과 결핍을 해결해주셨어요

당신에게 감사드려요

이제는 나를 죽게 해주세요


사장님이 말씀하셨어요

알았어

오늘은 일이 너무 많으니

그 일들을 모두 끝내도록 해라

그리고 내일 죽으렴!


한국에서 농업 노동자로 살아가며 겪었던 일들을 글로 써 이미 네팔에서 출간한 경험이 있는 그는 지난해 네팔로 돌아가 시인의 삶을 살고 있다.













다시 꿈의 모양을 생각해본다.


꿈의 방법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어떤 꿈을 꾸는가.


어떻게 꿈 꾸는가.





그리고


고단한 노동과 기울어진 힘에 대해서도.





어서 더 나은 내일이 왔으면 좋겠다.








↓ 관련기사 링크 ↓



한겨례 [토요판] 커버스토리:

"꿈들이 삶을 죽인다. 그런 꿈을 나도 한국에서 꾸고 있다."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96085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