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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월 여행)

평범하게 비범한 여행의 끝 "어땠어?" 한국에 돌아와 다시 만난 반가운 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어쩌면 그 대답이 될지도 모를, 여행의 끝. 그 이야기. 꼭 6개월의 여행이었다. 계절이 두어 번 바뀌었고, 몸무게가 7kg 정도 늘었다. 익숙했던 것들이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의 시간 동안 나는 여섯 나라를 다녔다. 깜깜한 밤 목이 쉬도록 도와달라 소리친 적도 있었고, 배를 부여잡고 깔깔댔던 적도, 눈물을 콸콸 쏟았던 적도 몇 번인가 있었다. 이러다가 추워서 죽겠구나 생각한 적도 있었고, 이래서는 더워서 죽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 모든 순간마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 어떻게 이동하지. 잠은 어디서 자나. 아, 그보다도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지. 고민하며 했던 선택이 고스란히 내일이 되고 또 모레가 되었다. 그것.. 더보기
남겨진 이들의 몫 고등학생이던 나는 그날도 학교로 향했다. 아직 한적한 교실에는 드문드문 친구들의 가방. 나도 가방을 내려놓고 그곳으로 향했다. '역시 여기 있었네' 하면서. 그 시절 우리의 하루는 배가 고파도 고프지 않아도 매점에 모여 간밤에 밀린 수다를 떠는 것으로 시작되고는 했다. 어깨동무를 하고 깔깔대면서도 입은 한시도 쉬지 않고 분주했다. 완벽하게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의 시작이었던 그때. 매점 한쪽에 놓여있던 TV로 우리의 시선이 모아지던 순간을 기억한다. 유유히 날던 비행기 한 대가 높은 빌딩으로 돌진하자 이윽고 붉은 불기둥과 시커먼 연기구름이 새파란 가을하늘을 방해하듯 솟구치던 장면. 2001년 9월 11일의 일이었다. 주변의 모든 것은 이제 희미하지만 그 장면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 더보기
평범하게 비범한 여행: 그리고 꾸바 마지막이기도 하고 조금은 다르게 마무리하고 싶어서 써 두었던 일기를 올려볼까 했지만, 이미 한국에 온 지도 한 달하고 반. 게으름이 극에 달해 하던 것도 이렇게나 밀린 상황. 그리하여 일기는 넣어 두고 하던대로 여행의 기록. 그 마지막. 꿈의 꾸바.내 안의 '더 이상은 안 되겠다'와 '오늘은 또 참을만 한데 그냥 다닐까'가 롤러 코스터를 타던 직장인 시절. '봐봐, 안 되겠지?'라며 사직서 쪽으로 퐁당퐁당 돌을 던지게 했던 바로 그 꾸바. 그래서 멕시코도 버리고 마음 먹고 도착한 Havana 춤과 음악과 모히또만이 넘실거릴 줄 알았던 꾸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반나절 만에 회의에 빠졌다. 분명 사랑에 빠질 거라고 확신했던 나는 꾸바를 나가는 비행기 티켓만은 미룰 수 있을 만큼 미룬 나중으로 미리 사 두었던 .. 더보기
장황한 배경설명 살짝 살짝 이야기한 바 있지만 (없나요), 꾸바에서는 인터넷이 안 된다. 아니. 안 되는 것은 아니나 상당히 번거롭달까 쉽지가 않은데, 어쨌든 인터넷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일단 1. '인터넷 카드'라는 것을 사서 2. 지정된 장소(주로 유명호텔이나 센트로 광장 등)에 가 3. 구입한 카드에 부여된 아이디와 패스워드를 휴대폰에 입력하면 4. 금액에 따라 제한된 시간 동안 인터넷 사용이 가능하다. 이러한 이유로 정말 필요할 때가 아니면 인터넷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던 꾸바에서의 날들. 시간도 많고 괜찮지 않을까 싶어 매일 그림일기를 써 보기로 했다. 그래, 그러니까, "꾸바에서는 매일 스페인어 그림일기를 썼어요." 이런 식으로요, 이 말을 하려고 서두가 길었는데 그건 왜냐하면, 조금. 아주 조-금. 부끄러워서 .. 더보기
평범하게 비범한 여행: 네 달 반째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경유차 일본 공항에 잠시 대기 중이다. 지금이다 싶어 마저 적어 내려가는 여행의 기록, 보름 간의 꼴롬비아 이야기. Cartagena 까르따헤나. 제대로는 Cartagena de Indias. 꾸바를 닮은 꼴롬비아 북부의 도시다. 알록달록한 색감의 집들이 늘어선 풍경으로 유명하다. 골목 사이로 들어가면, 음 과연, 알록달록하군, 음음 마차도 보이고, 그렇군. 하며 그저 시큰둥한데는 이유가 있었다. 정말이지 너무너무 더웠다. 사진이 다 뭔가요 싶은 습도랄까. (하지만 나중에 꾸바에 가서 반성했다. 이 정도면, 그래. 쾌적했다.) 하루는 지도를 보다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께스 할아버지의 집이 이곳에 있는 걸 발견. 그럼 안 가 볼 수가 없지, 해서 찾아가 봤는데 들어가 볼 수는 없.. 더보기
바야흐로 끝물 이게 얼마만의 허세인가 모르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닌 것 같아도 뉴욕. 역시 아닌 것 같아도 센트럴 파크. 잔디밭에 앉아 지난 6개월을 떠올렸더니, 참 빠르게 지났고 참 많은 일들이 있었구나. 생각이 들면서 콧잔등이 슬며시 시큰시큰한 것이, 흐음 바야흐로 끝물이군. 그리고 역시 밀리면 다 귀찮은 거로군. 일기든 블로그든. 그런 생각도 함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늘의 스페인어 Mi blog está retrasado. / 블로그 밀렸쪄. 더보기
하고 싶었던 것, 세 번째 깔리에서 며칠 살사를 배웠다. 그리고 일본인 친구 타카시와 신나게 우노 도스 뜨레스! 춰 보는데 오늘의 스페인어 Ahora es la hora de salsa! / 지금은 살사타임! 더보기
걸어서 음식 속으로 라고 해도 무리가 아닐만큼 정말 잘, 많이, 먹은 여행. 그다지 맛집을 꼭 찾아 가거나 긴 줄을 기다려 가며 먹는 편이 아니어서 여행을 할 때면 살이 빠지고는 했는데, 뻬루에 있는 동안은 매일이 기록 경신이었다. 바로 그 이야기. 먼저 Chifa. 중국식 볶음밥이다. 남미에는 중국 음식점이 참 많다. 볼리비아 음식의 여파로 속이 너무 허해 뭐라도 좋으니 밥 같은 것을 먹고 싶었는데, 뻬루의 첫 도시였던 뿌노에서 가격도 싸고 하길래 그럼 한 번,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로컬 식당에서 2-3천원 정도의 가격에 밥을 한 보따리 퍼 주는 것이다. 한 번에 다 먹을 수는 없고, 포장했다가 두 끼에 걸쳐 먹고는 했다. 맛은 뭐, 그냥 볶음밥이다. 어디를 가든 양이 어마어마. 엄청 배고픈데 돈이 없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