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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비범한 여행의 끝

"어땠어?"





한국에 돌아와 다시 만난 반가운 이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다. 어쩌면 그 대답이 될지도 모를, 여행의 끝. 그 이야기.






꼭 6개월의 여행이었다. 


계절이 두어 번 바뀌었고, 몸무게가 7kg 정도 늘었다. 익숙했던 것들이 잘 기억나지 않을 만큼의 시간 동안 나는 여섯 나라를 다녔다.


깜깜한 밤 목이 쉬도록 도와달라 소리친 적도 있었고, 배를 부여잡고 깔깔댔던 적도, 눈물을 콸콸 쏟았던 적도 몇 번인가 있었다. 이러다가 추워서 죽겠구나 생각한 적도 있었고, 이래서는 더워서 죽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 모든 순간마다


다음에는 어디로 갈까. 어떻게 이동하지. 잠은 어디서 자나. 아, 그보다도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지. 고민하며 했던 선택이 고스란히 내일이 되고 또 모레가 되었다. 그것은 정확히


살아 '나아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 그것은 또 정확히


내가 나로서 한 사람의 몫을 오롯이 해내고 있다는 그런 단단함 같은 것이었다. 그리고 마주쳤던 그렇게 살아 '나아가고' 있었던 길 위의 여행자들.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다.


우리는 저마다의 삶을 살아 나가다가, 어느 날 아주 잠깐 마주치기도 하고, 또 각자의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다 또 다른 누군가의 삶과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누군가와는 울타리를 넓혀 서로의 삶을 오래도록 공유하기도 할 것이다. 그러니까


누구의 일상이 평범하다, 또 누구의 일상이 비범하다,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누구의 삶이 맞다, 또 누구의 삶은 틀렸다, 라고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어느 오후, 광장에 앉아 멍하니 했던 이런 생각들이 점차 여행이 되어갔다. 이를테면 




칠레의 북부, 사막도시 아따까마에서 샀던 이 바지. 


6천 원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낭여행자들이 너무 많이 사 입어 원래는 살 생각이 없었는데, 이전 도시에서 처음으로 소매치기를 당하고는 돈 아끼더니 이 꼴이 웬 말이냐며 홧김에 사버렸다. 거의 매일 잠옷으로 입었고, 장거리 이동할 때도 꽤 입곤 했다. 우유니에 가기 위해 볼리비아 국경을 넘다가 2인조 사기꾼들에게 당했을 때도 이 바지를 입고 있었다. 색이란 색은 총동원되어 화려하기 짝이 없는 것이 어쩐지 입어도 입어도 부끄러웠지만 티티카카 호수에서 산책하다가 한 번, 뻬루 국경 근처에서 또 한 번, 이 바지에 찬사를 보낸 관대한 친구들이 둘이나 있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고마울 따름이다.


라고 하는 것들.



정말 이 여행이 소중하다고 느껴지는 것은 이렇게 바지 하나에도 온갖 기억이 켜켜이 쌓인 시간들, 사람들, 이야기들 때문이다. 유명하다는 맛집의 인기메뉴 때문도 아니고, 이름도 모르면서 사람들이 찍으니까 덩달아 찍어보는 오래된 동상 때문도 아니었다.





그런 여행의 마지막 밤.


뉴욕의 숙소에서 짐을 싸며 고민 끝에 정든 그 바지를 버리고 왔다. 그런 결정을 내린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1. 한국에서 절대 입지 않을 바지다.

2. 가랑이가 찢어졌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뭐야? 나 그렇게 다리 쭉쭉 벌리지 않았던 것 같은데? ㅋㅋㅋㅋㅋㅋㅋ





어쨌든


버릴 건 버리고, 챙길 건 챙겨서,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왔습니다. : )





오늘의 스페인어


Volví!     /     I'm 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