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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양을 좋아하세요?

출처: 나무위키


지난 달 시작된 에드워드 양(Edward Yang) 특별전을 맞아 그의 영화를 한 편씩 보고 있다.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나 대만으로 이주해 타이페이에서 성장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공학도의 삶을 살다 80년대 초반 자국에 돌아와 영화감독으로서의 새 삶을 시작하게 된다.


이제 그는 떠나고 없지만, 여전히 세기 말 대만 영화의 새로운 흐름의 상징이자 영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거장으로 기억되는 감독.





그를 알게 된 것은 2-3년 전쯤 한국에서 재개봉된 영화 《하나 그리고 둘》을 통해서였다. 다른 영화를 보러 갔다가 예고편을 보고 끌리는 마음에 바로 예매해서 봤던 기억이 있다. 사진첩을 뒤져보니 2018년 7월. 2년 전이었구나. 그리고 그로부터 대략 2년 뒤, 그의 또 다른 영화 몇 편이 특별전으로 다시 한국에서 상영 중이라니. 봐야지. 이건 안 볼 수가 없지. 단 한 편의 경험이었지만 나는 그를 믿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적어 내려갈 이야기는 그랬으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좋은 발견으로 작은 기쁨을 주는 이야기가 된다면 좋겠다.


2년 전 여름 내가 그랬던 것처럼.











#01


출처: 네이버영화


하나 그리고 둘

A One And A Two

2000년

173분


(타이페이 3부작, 마지막 작품)


알려진 줄거리


8살 소년 양양은 아빠 NJ로부터 카메라를 선물 받는다.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그들의 뒷모습을 찍는 양양. 양양의 사진 속에는 사업이 위기에 빠진 시기에 30년 전 첫사랑을 다시 만나게 된 아빠 NJ, 외할머니가 사고로 쓰러진 뒤 슬픔에 빠져 집을 떠나있게 된 엄마 민민, 외할머니의 사고가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누나 팅팅, 그리고 저마다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은 '진실의 절반'을 간직한 삶들의 이야기.


발췌: 네이버영화


알려주고 싶은 TMI


보이는 것만 믿는 것은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보이지 않는 것들은 알 수조차 없기 때문에. 하지만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 보인다고 모두 진실이라고 할 수 있을까. 감독은 타이페이 중산층 가족의 삶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 질문은 8살 소년의 입을 빌려 조금 더 간결하고 명확해진다.



우린 절반의 진실밖에 볼 수 없는 걸까요?

아빠, 아빠가 보는 건 내가 못 보고

내가 보는 건 아빠가 못 보잖아요.

어떻게 해야 아빠가 보는 걸 나도 볼 수 있어요?


등굣길 차 안. 양양이 묻자 NJ가 답한다.


좋은 질문이네.

그게 바로 카메라가 필요한 이유란다.



양양은 그래서 사진을 찍는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으로. 각자가 보는 절반의 진실(하나)과 스스로 보지 못하는 절반의 진실(또 하나)를 더해 온전한 하나가 되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반과 반이 만나 하나가 되기도, 둘이 되기도, 혹은 제로가 되기도 할테지만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것이니까. 보는 것, 보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닐까. 8살 소년은 그런 멋진 답을 내린 것 같다. 우리는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는 《하나 그리고 둘》이지만, 영어 제목인 《A One And A Two》에서 And는 '그리고'보다는 '~와/과'로 해석되는 것이 정확하다고 한다. 말하자면 《하나와 둘》. 영화를 보고 난 뒤의 감상에 더해 중국어로 '하나'를 뜻하는 Yi[이]가 반복된 원제 《Yi Yi》를 떠올리면 한국어 제목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영화는 결혼식으로 시작해 장례식으로 끝난다. 재회한 첫사랑과의 과거를 회상하는 NJ의 삶 위에 막 첫사랑이 시작된 팅팅의 삶이 시차를 넘어 포개어지고, 가장 연로한 할머니의 마음에 깊이 공감한 이는 가장 어린 손자 양양이다. 그리고 또 하나, 에드워드 양의 유작인 이 작품이 내가 그를 알게 된 첫 작품이 되었다는 점 역시 어딘지 모르게 이 작품과 어울리지 않나. (라고 억지로 의미부여해 봄)


어쨌든, 이러한 보편적인 순환성을 이야기하는 영화가 취향이라면 추천추천. 바꾸어 말하면 극적인 사건이나 갈등이 없어 지루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지루하지 않았다.











#02


출처: 네이버영화


공포분자

The Terroriser

1986년

109분


(타이페이 3부작, 두 번째 작품)


알려진 줄거리


텅 빈 새벽을 울리는 총성. 경찰 수사를 피해 도망가다 다리를 다친 소녀를 우연히 카메라에 담게 된 소년은 사진 속 소녀에게 점점 이끌린다. 그 무렵 갑작스레 출세의 기회를 잡게 된 의사 이립중과 슬럼프에 빠진 소설가 아내 주울분은 권태로운 부부생활에 지쳐있었고, 이때, 소녀가 무심코 걸어온 장난전화를 아내가 받게 되면서 조용했던 네 일상은 이윽고 기묘한 비극으로 번지기 시작하는데…


발췌: 네이버영화


알려주고 싶은 TMI


공포 영화 아님. 처음 제목만 보고 공포영화인가 싶어 망설였는데 (뒤에 이야기하겠지만) 이 영화를 건너뛰면 만나는 영화가 4시간짜리 영화라서 결국 먼저 본 특별전 첫 영화. 그렇게 2년 만에 다시 만난 에드워드 양 월드.


1980년대의 타이페이. 무관하게 나아가던 네 사람의 일상이 규합되는 '어떤 순간' 그 누구도 예측하지 않은 결말로 치닫는다. 그 이후, 그들의 관계에 대하여 우리는 어떤 해석을 할 수 있을까. 돌이킬 수 없이 얽혀있다고 해야 하는 걸까. 여전히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해야 하는 걸까. 영화 《공포분자》는 어떤 이도 누구로든 치환 가능한 익명의 도시 속에서 사슬처럼 뻗어있는 관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우연히 찍은 사진 한 장이, 우연히 펼친 전화번호부의 어떤 페이지가, 또 우연히 걸려 온 전화 한 통이 무엇에 기인했고 어떤 결과를 낳는지. 그 시작이 누구이고, 그 끝은 누구인지. 그리하여 두려움을 만드는 이는 누구인지, 두려움을 겪는 이는 누구인지. 우리가 사는 이 세계에 왠지 '공포분자 질량 보존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을 것만 같다.


이 역시 자극적인 사건 설정은 없지만, 쫄깃한 플롯과 열린 결말이 그의 다른 작품들에 비하면 꽤 흥미진진(?)한 요소이므로 추천. 











#03


출처: 네이버영화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A Brighter Summer Day

1991년

237분


알려진 줄거리


14살 소년 샤오쓰는 국어 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중학교 주간부에서 야간부로 반을 옮기게 되고 '소공원'파와 어울려 다닌다. 그러던 중 샤오쓰는 양호실에서 이라는 이름의 소녀를 만나게 된다. 소녀는 '소공원'파의 보스 허니의 여자로 허니는 샤오밍을 차지하기 위해 경쟁조직인 '217'파의 보스를 죽이고 은둔 중이다. 보스의 부재로 통제력을 상실한 '소공원'파는 보스 자리를 두고 혼란에 빠지고 돌연 허니가 돌아오게 되면서 '소공원'파 내부과 '217'파간의 대립이 격해진다. 그리고 밍을 사랑하게 된 샤오쓰도 이들의 싸움에 휘말리게 되는데…


발췌: 네이버영화


알려주고 싶은 TMI


위에서 이야기했던 4시간짜리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러닝타임도 그렇지만 제목부터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이라니. 뭔가 (내가 되게 싫어하는) 유혈이 낭자에, 조직, 보스, 이런 이야기 아닐까. 괜찮으려나 싶었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유혈이 낭자했지만 괜찮았습니다. 조직, 보스 이런 이야기 맞았지만 괜찮았어요. 그래서 조금 졸았지만 괜찮았다고요, 하하. 조직 간 알력 묘사가 이어지던 초반은 지루하더라고요 또르륵... 그래도 긴 러닝타임이나 취향 아닌 소재 등 마이너스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플러스가 있는 작품이었다는 것만은 진심진심.



(덕분에 상영 중 인터미션을 경험함)


1950년대 후반, 1960년대 초의 대만. 자국 최초의 미성년자 살인사건으로 기록된 실제 사건이 배경인 작품이지만, 에드워드 양 감독의 출생 시기와 이후의 성장 과정 등을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감독 자체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래서 전후의 대만. 일본군이 철수한 지 오래지 않아 아직 곳곳에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는 대만. 그곳으로 이주한 외성인과 본성인, 또 원주민이 한데 살아가는 혼돈의 시대적 배경을 알고 보면 소품, 음악, 또 인물의 대사까지 지루할 틈이 없는 정교한 작품이다.


이러쿵 저러쿵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괜찮았던 이유이기도 하다. 알려진 줄거리만 보았을 때는 한 무리의 소년들이 이쪽에서 저쪽으로 우와아악 몰려가서 우당탕탕 때려 부수면, 또 다른 무리의 소년들이 저쪽에서 이쪽으로 다다다닥 몰려가서 쿠당탕탕 깨부수다 끝날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가 않다. 큰 축인 소년들의 서사 사이에 가족과 사회, 역사와 문화의 서사가 촘촘히 짜여있다.


때문에, 마구 뒤얽혀 혼란스러운 시절 속에서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묻는 이 영화에서 '빛'은 중요하다. 낡은 전구가 켜지며 영화가 시작되다 후반부에 산산조각나는 장면, 샤오쓰가 몇 번이고 스위치를 껐다 켜는 장면, 벽장 속 잠자리에서 손전등 불빛에 기대어 진짜 마음과 다짐을 써 내려가던 장면 등. 감독은 빛으로 진실을, 어둠으로 허구를 은유한다.



진짜, 가짜도 구분하지 못하면서

무슨 영화를 찍어요!



그리고 최후의 결심 후, 마침내 손전등을 버리고 떠나며 촬영소 관계자에게 쏘아붙인 샤오쓰의 노골적인 한 마디에 앞선 은유들이 해소된다. 아니, 애초에 샤오쓰가 사랑한 유일한 존재 샤오밍이 '작은 빛'을 뜻하는 한자 '소명'인 것에서부터 이미 너무나 명징했을지도.


에드워드 양의 팬들 중에는 이 작품을 최고로 꼽는 이들이 많은데, 보고 나니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야기는 물론이고 연기, 미장센, 촬영, 강렬한 오프닝과 엔딩까지 거의 모든 것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 큰 영화다.


덤으로 영화의 주인공인 샤오쓰를 연기한 14살의 배우 장첸도 볼 수 있다. 정말이지 성인 장첸을 다시 그대로 줄여놓으면 샤오쓰라고 해도 될 만큼 시차가 없는 생김새에 충격. 데뷔작인 이 작품에서 그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멋진 연기를 펼친다.





언젠가 『씨네 21』의 김혜리 기자가 특집기사의 주제(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아무튼 어떤 주제)에 맞는 작품으로 에드워드 양의 《하나 그리고 둘》을 꼽으며 했던 코멘트를 기억한다.



"우리가 에드워드 양을 잃은 것은 거의 징벌이다"



정말. 2-30년의 세월을 머금은 작품이 이토록 세련되고 매혹적이면서도 시공을 아우르는 통찰력을 가질 수 있다니. 그가 살아 만들어냈을 이후의 작품들이 또 얼마나 큰 울림을 주었을까 생각하면 김혜리 기자의 코멘트에 공감 버튼을 백만 번 눌러도 모자라다. 그리고






아직 보지 못한 한 편.





곧 #04가 될


출처: 네이버영화


타이페이 스토리

Taipei Story

1985년

119분


(타이페이 3부작, 첫 번째 작품)


알려진 줄거리


흘러가는 과거에 안주하며 방직공장을 운영하는 아룽과 새로운 시대의 흐름을 타는 자유로운 사고의 커리어우먼 수첸.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꿈을 꾸던 이 연인의 관계는 점차 무너지기 시작한다.


발췌: 네이버영화


알려주고 싶은 TMI


아직 보지 않아서 모릅겠습니다만, 딱 하나. 아룽 역의 배우가 감독 허우 샤오시엔(Hou Hsiao Hsien)이라고 한다. 이것으로 이미 끝.





역시 기대된다.


연휴가 지나면 보러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