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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이 나왔다.





띠지에 선명한 '『여자 없는 남자들』 이후 6년 만의 소설집'. 어디까지나 소설로써 6년 만인 것이고 중간중간 에세이나 인터뷰집이 나오기는 했지만. 어쨌든 하루키 파워는 여전해서 벌써 대형서점의 인기 순위에서 빠지는 일이 없다. 대단해.


화제인 만큼 표지 디자인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던데 구닥다리 같다, 촌스럽다, 왜 저러냐 등등.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괜찮았다. 지극히 주관적이기는 하지만 그를 떠올리면 그려지는 이미지와 잘 맞는 표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표지는 문제가 아니지.
































내용에 비하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이 글은 조금은 그런 이야기가 되겠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일인칭 단수』에는 총 8편의 단편이 실려있는데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수준으로 소설 반 에세이 반 같은 책이다. 허구와 자전적 경험이 종횡무진이라 230여 쪽 분량의 이야기가 금세 읽힐 정도. 그렇게 펼쳐지는 여덟 가지 이야기는 곧


삶의 어느 시절, 누구라도 겪을 법한 아주 사소한 경험이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나'의 세계를 통과할 때 어떤 기이한 경험이 되는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 점에서 흥미로운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데 왜 나는 온갖 혹평이 쏟아지는 표지보다 내용이 더 실망스러웠는가. 그건








나는 변했고, 그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라고 결론지었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다. 이번 책은 비교적(?) 젊은 시절에 발표한 그의 에세이가 돌아온 것 같은 인상을 주었는데, 팬(이었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반가움보다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예전의 내가 의심 없이 읽어내려갔던 그의 세계관이 이제는 제법 미심쩍다고 해야 할까. 대략 이런 기분. 그러니까 그 또는 그의 글은 여전한데 내가 변한 것이겠지. 그렇겠지.



장편 『1Q84』 즈음이었을까. 그 무렵 마음이 꽤 식어서 이후의 책을 읽어 말어 하다가 본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마지막으로 그의 책은 더이상 읽지 않았다. 그러다 2년 전, 표지가 너무 귀여워서 읽고 만 인터뷰집 『수리부엉이는 황혼에 날아오른다』를 읽고 '아 그래... 이런 부분은 좋아했었지...' 하며 감상에 젖었던 기억을 타고 흘러 흘러 『일인칭 단수』를 읽어버린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인데.








아악, 싫다 싫어!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으응? 뭐라고요 아저씨?








정도는 되어 이제 찾아 읽지는 않을 것 같다.









그 '무엇'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이유는 뭐랄까 실망 포인트라는 것이 그야말로 철저하게 '나'라고 하는 일인칭 단수 시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는 내가 실망한 정확히 그 지점이 매력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것이니까. 내 주관적인 호오로 누군가의 팬심에 재를 뿌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에요. 궁금하시면


직접 읽어보기를 추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무튼 그런 와중에도 딱 한 번, 퇴근길 지하철에서 빵 터지고 말았던 부분이 있었는데









다섯 번째 단편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이 단편을 읽다가 소리내서 웃고 말았다. (그리고 두리번두리번) 야구를 사랑하기로 유명한 그가 직관을 하며 지루해질 때마다 끼적였던 시 몇 편과 그에 얽힌 추억담이 이야기의 전부로 웃길 부분이 있겠나 싶지만 있더라고요? 〈외야수의 엉덩이〉라는 시를 읽을 때 였어요.










외야수의 엉덩이





나는 외야수의 엉덩이를 바라보는 걸 좋아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루하게 지는 경기를

외야석에서 혼자 보고 있을 때

외야수의 엉덩이를 찬찬히 뜯어보는 것 말고

무슨 재미가 있으랴?

있다면 가르쳐주길.

그런 연유로

외야수의 둔부에 대해 말해보라고 하면

나는 밤을 새워서 말할 수도 있다.

스왈로스 중견수

존 스콧의 엉덩이는

모든 기준을 넘어 아름답다.

하염없이 다리가 길어서, 엉덩이가 흡사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슴 설레는 대담한 은유처럼.

그에 비하면 좌익수

와카마쓰의 다리는 생각보다 짧아서

둘이 나란히 서면

스콧의 엉덩이가 거의

와카마쓰의 턱 부근에 있다.

한신 라인바크의 엉덩이는

균형이 잡혀서, 자연히 호감이 간다.

바라보고만 있어도

그대로 설득당할 것 같다.

히로시마 카프 셰인의 엉덩이 모양은

어딘지 모르게 신중하고, 지적이었다.

성찰적이었다, 고 해야 할까.

사람들은 그를 셰인블럼이라고

풀네임으로 불렀어야 한다.

예컨대 그 엉덩이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서라도.

그건 그렇고, 아름답지 못한 엉덩이를 가진

외야수의 이름은―여기까지

튀어나올 뻔했지만―역시

말하지 않기로 하자.



어떤가요? 웃긴가요?
(그럼 절반은 성공)


여기에서 내가 빵 터진 부분은 19-20행


스콧의 엉덩이가 거의
와카마쓰의 턱 부근에 있다.



이 부분이었는데, 사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용보다도 그 두 행이 실린 본문의 레이아웃 때문이었다. 이 시는 본문에서 총 세 쪽에 걸쳐 실리게 되는데 그 배치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스콧의 엉덩이가 거의


에서 무방비 상태로 있다가 돌연




와카마쓰의 턱 부근에 있다.


라니. 엄청난 이야기를 뭐 이렇게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도 없이 대뜸 하냐규 너무했어 정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떤가요? 웃기죠? 웃기잖아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만약 한 행이라도 앞으로 당겨지거나 뒤로 밀려 두 행이 한 쪽에 같이 붙어있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피식-했을지는 몰라도 빵-까지는 아니지 않았을까. 행운이었다.
































그의 이런 유머코드가 좋았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태연하게 하고 보는 뻔뻔함이랄까. 물론, 본인이 의도를 가지고 웃기려고 했다기 보다는 그의 그런 부분을 내가 재미있다고 느끼는 것이겠지만, 어찌됐건 좋았다. 하지만








(다음 책은 읽지 않을 것 같아요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