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안소니(안소니 홉킨스)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 이야기는 딸 앤(올리비아 콜맨)이 그를 찾아온 런던 주택가의 거실에서 시작되어
새로운 연인과 파리로 가서 살겠다는 앤 / 자신이 사위라고 말하는 모르는 남자 / 이윽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르는 얼굴의 앤 / 사라진 남자 / 파리가 다 무슨 소리냐는 앤 / 없어진 시계 / 나타난 시계 / 또 나타난 파리로 가겠다는 앤 / 자신이 사위라고 말하는 또 다른 남자 / 그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 / 내 것 같은 시계 / 자꾸만 없어지는 시계 / 하지만 어느새 손목에 있는 시계 / 어떤 폭력 / 새로운 간병인을 만나기로 한 아침 / 그러나 저녁 / 둘째 딸을 닮은 새로운 간병인 / 죽은 둘째 딸의 목소리 / 내 집 / 내 방
그리하여 마침내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만 안소니의 작고 낯선 방에서 끝난다. 앞과 뒤, 안과 밖, 시작과 끝이 뒤틀린 세계에 잠식당하는 당혹감과 두려움. 이 영화는 그런 안소니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동시에 그 곁을 감당해야 했던 앤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그 작고 낯선 방 문 앞에 서서 안소니는 말했다.
"내 잎사귀가 다 지는 것 같아..."
이보다 더 명징할 수 있을까. 세상 살아있는 모든 것은 죽는다. 생의 잎사귀가 떨어져 나갈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모든 안소니는 그래서 외롭고, 모든 앤은 그래서 괴롭다. <더 파더>는 그 깊은 외로움과 괴로움을 더할 나위 없이 담아냈다.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동명의 프랑스 연극이 원작인 이 작품은 원작자인 플로리앙 젤러의 영화 데뷔작이기도 한데 주연이 안소니 홉킨스, 조연이 올리비아 콜맨, 각본이 크리스토퍼 햄튼이라니. 데뷔 같지 않은 데뷔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곧 있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 여우조연상을 포함해 각색상, 미술상, 작품상, 편집상까지 총 6개 부문에서 후보지명이 되기도 했다.
(아직 <노매드랜드>를 안 보고 막 던지는 말이기는 하지만) 여우조연상은 <미나리>의 윤여정 배우가 받았으면 좋겠으니까 그건 빼고 조심스럽게 남우주연상과 편집상을 예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