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매해둔 전시를 보러 갔더니
입장 대기시간이 무려, 3시간
게다가 장맛비가 내리기 시작
이건 아니다
다음에 다시 오자
하고 나오는 길에 근처 작은 갤러리로 향했다.
임창민 개인전
<앳 더 모먼트 At the Moment>
각기 다른 장소에서 촬영한 사진과 영상의 조합을 통해 하나의 작품 안에서 새로운 시공간을 만들어내는 작업이라니. 무척 흥미로웠다. 가령,
이 작품은 상해의 건물 내부에 있는 창문에 대관령의 눈 내리는 풍경 영상을 결합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익숙한 풍경임에도 불구하고 보고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인 순간을 목도하는듯한 기분이 든다.
일몰 무렵의 파도나 바람에 바스락거리는 잎사귀, 또 흔들리는 여린 꽃잎처럼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작고 평범한 풍경이 각자의 특별한 순간이 되는 경험. 그중 가장 마음에 남았던 풍경은
네모난 프레임 너머 짙푸른 윤슬.
어느 여름에 본 바다가 생각났다.
8년 전. 아직 첫 회사에 다닐 무렵. 그때는 여름과 겨울이면 보름씩 휴가를 떠날 수 있었다. 직장인으로서는 좀처럼 누리기 힘든 호사. 그래서 오래 다닐 수 있었다고 120% 확언할 수 있다. 아무튼 8년 전 그 여름. 나는 크로아티아를 여행했다.
크로아티아의 남부. 두브로브니크에 머물던 어느 날. 내리쬐는 햇볕 아래에서 오래 성벽을 걷다 우연히 발견한 담벼락의 작은 이정표.
마침 목도 말랐는데
뷰티풀 뷰라니. 그것도 모스트 뷰티풀 뷰라니.
화살표를 따라 걷지 않을 수 없었다.
빼꼼 나타난 수상한 구멍.
이윽고 속속 밀려 나오는 사람들.
그 끝에 바다가 보이는 절벽 카페가 있었다.
이토록 가까이에서 넘실대는 바다.
계단을 따라 더 가까이 내려갈 수도 있었다.
카약 타는 사람들도,
수영하는 사람들도,
파라솔 아래에 앉아 그런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사람이 바로 나. 그런데 나, 복숭아 주스 마셨니? 아니 이런데서 지금 맥주 안 마시고 복숭아 주스를 마신 거야? 무슨 일이야 이게?
바다가 보이는 그날 그 자리에 앉아 마신 것이 물이었는지 주스였는지는 까맣게 잊고 이제 와 새삼 실망을 하면서도 결코 잊지 않고 있었던 무엇.
희게 부서지던 파도와 짙푸른 윤슬.
8년 후 서울에서 만난
8년 전 아드리아 해의
푸른 바다.
앳 더 모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