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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비범한 여행: 두 달째

마지막으로 먹은 것이 사과 한 개와 바나나 한 개, 그리고 커피인데 그 이후로 이틀 정도 앓아 눕고 말았다. 기운이 없고 토할 것 같은 상태가 계속 되었는데, 이것이 고산병인지 체한 것인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우선 고산병 약을 한 번, 두 번 먹었는데 영 효과가 없어서 마지막으로 혹시나 싶어 챙겨 온 옛 회사동료가 준 용하다는 한방 소화제를 먹었더니 차도가 있는 듯 하다.

 

 

 

 

이렇게 드러누워 있는 사이 어느새 여행 두 달째가 되었다. 나는 지금 볼리비아 수크레에 있다.

 

 

 

 

 

한 달만에 다시 적어보는 여행의 기록. 꽤 많이 올라왔다.

 

 

 

 

 

아르헨티나, 칠레와도 작별. 아주 많은 일들이 있었다.

 

 

 

 

Osorno

 

칠레 중남부의 작은 도시.

 

아르헨티나의 바릴로체에서 화산 트레킹으로 유명한 칠레의 푸콘으로 넘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도시다. 나도 그럴 생각이었는데,

 

 

 

먼저 숙소 때문에,

터미널에서 엄청 멀고 간판 같은 것도 없었지만 늦은 밤 도착한 배고픈 여행자에게 빵과 잼과 차를 아낌없이 내어 주던 인심 좋은 숙소.

 

 

 

(게다가 세탁기도 공짜로 돌릴 수 있었다. 오예!)

 

 

 

(아끼는 술도 나누어 주시고, 오예오예!)

 

 

 

그리고 그곳에서 먹었던 잼 때문에,

주인 아주머니가 라즈베리와 복숭아로 만든 수제 잼인데 이게 요물이다. 매일 아침 빵을 세 쪽씩 먹었다. 진심으로 한 병 가져가고 싶을 정도. 뭐였더라 꽃잎으로 만든 다른 잼도 있었는데 그것도 맛이 아주 훌륭했다.

 

 

 

또 한적했던 거리 때문에, 

인구 자체도 많지 않은 듯 했지만, 참 조용하고 깨끗했다. 특별한 관광지도 없는 동네라 여행자도 많지 않아 모처럼 여유롭게 골목골목을 돌아 다녔었다.

 

 

아무튼 이런 저런 이유로 이 곳이 마음에 들어 며칠을 묵으면서 인상적인 일들이 있었는데,

 

 

 

길을 잘못 들어 우연히 들어가게 된 묘지에서 유독 눈에 밟혔던, 세상에 나와 하룻밤을 넘기지 못하고 다시 별이 된 어린 아이의 묘비. 마침 이날 아침에 이모를 하늘나라로 보낸 경화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던 터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참동안 생각이 많았다.

 

 

 

그리고 길을 걷다 보면 심심치 않게 보이는 한국 브랜드. 자동차 산업의 요충지인가, 모르겠다.

 

 

 

또, 우연히 만난 아르헨티나 여행자. 안녕? 하고 말을 걸더니 순식간에

 

 

 

이런 깜찍한 것을 만들어 주었다. 여행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나씩 만들어 주는 모양이다. 나는 이 기분 좋은 선물을 가장 자주 갔었던 공원에 가져가 함께 사진으로 담아 두었다. 정말 더할 나위 없는 날들이었다.

 

 

 

 

Puerto montt / Puerto Varas

 

 

오소르노에 며칠 더 있게 되면서 원래 가려고 했던 푸콘을 가지 않기로 했다. 그러던 차에 눈에 띄었던, 그리고 겨라씨와 다시 만나서 함께 지냈던 곳.

 

 

 

먼저, 뿌에르또 바라스.

숙소가 있는 뿌에르또 몬뜨에서 버스로 2-30분 거리에 있는 도시. 남미에서 2-30분 만에 다른 도시에 갈 수 있다니.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반신반의했으나 정말이었다!

 

 

 

이전에 머물렀던 오소르노에서 보다도 더 오소르노 화산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마을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작은 도시라 금세 한 바퀴를 돌아 보고 전망대까지 다녀왔지만 시간이 남았다. 무얼할까 하다가 근처 서점에서 엽서를 사 카페에 갔다.

 

 

 

무조건 시키고 본다는 둘세 데 레체가 들어간 케이크를 시키고 앉아, 엽서를 쓰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도 둘세 데 레체가 들어간 케이크는 대책없이 맛있는 맛.

 

 

 

세 장의 엽서를 써서 우체국에 가 두 장을 부쳤다. 주소를 기다리던 한 장은 바로 부치지 못해 산티아고까지 가지고 갔으나 끝내 부치지 못하게 됐다. 그 이유는, 음,

 

 

 

어쨌든, 해가 지기 전 다시 돌아온 뿌에르토 몬뜨.

항구도시라 해산물이 싸고 좋다길래 먹어 본 음식. 듣던대로 싸고 좋았다. 그러나 여기까지.

 

 

 

이튿날 나가보니 거리가 조용해도 너무 조용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니 칠레 인구조사의 날이라고 했다. 모든 가게가 문을 닫고, 모든 사람이 집에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저녁에 산티아고로 떠날 예정이었던 나는 하루 종일 지루함에 시달리다 마침내 저녁 8시, 버스에 올랐다.

 

 

 

 

Santiago

 

 

칠레의 수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도시. 그렇지만 너무 바빴던 도시.

왜냐하면 이 도시에서 소매치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비오는 목요일이었고, 부치지 못한 엽서 한 장의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경찰서 대기번호표 5번과 한국 영사관 전화번호.

 

 

 

산티아고에서 유일하게 좋았던 기억은 바로 이 Huesillo.

며칠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우울하게 보내다 떠나기 전 날 어거지로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사먹게 된 칠레 전통 음료다. 복숭아가 하나 통째로 들어 있고, 아래에는 보리인지 옥수수인지 둘 다 인지, 곡물도 들어 있는데 의외의 조합이었다.

 

 

 

얼룩덜룩한 마음으로 산티아고를 떠나기 전 날,

소매치기 이후 마음이 한껏 소심해져 숙소에 부탁해 다음 날 이른 새벽에 공항까지 타고 갈 콜택시를 예약했다. 리셉션의 매니저는 내 이름의 철자 하나하나까지 불러주며 완벽하다고 윙크를 막 날리더니, 다음날 기사에게 받은 영수증 속 내 이름이 츄이-이오운져-니. 이 사람. 아무래도 나 아니지 않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Isla de Pascua

 

 

모아이가 있는 곳. 신비의 땅. 이스터섬. 산티아고에서는 비행기로 4시간 남짓 걸린다.

 

 

 

숙소. 이곳에서 3박 4일간 홀로 캠핑을 했다.

 

 

 

텐트 안에서 바라 본 모습.

 

 

 

평화롭고 뜨거운 섬.

 

 

 

파도가 무척이나 셌다.

 

 

 

자전거를 빌려 내키는 곳으로 씽씽 달렸던 하루.

 

 

 

지나가야 하는 길 한 복판에서 동네 짱들의 기싸움에 발도 동동 굴러 보았고,

 

 

 

해 질 무렵, 인적 없는 언덕 꼭대기에서 갑자기 큰 비가 쏟아져 미친 사람처럼 자전거를 몰고 내려 오기도 했다. 이 때야말로 정말이지 발을 동동 굴렀다.

 

 

 

무사히 복귀하였으나 처참한 몰골. 진흙이 막 얼굴에 묻고 그랬던데, 그 얼굴로 살아 보겠다고 막 길을 묻고 그랬다. 그 덕에 해 지기 전에 마을로 내려올 수 있었지만.

 

 

 

그런가 하면, 건너 텐트에 묵는 대만 친구 체스가 뭍에서 따온 해산물을 그 자리에서 손질해

 

 

 

하와이 할아버지와 셋이 사이좋게 나누어 맛 보는 한가로운 오후도 있었다. 현지어로 '하뚜께' 라고 했던 것 같은데, 멍게나 해삼을 안 먹는 나에게도 그냥 그냥 괜찮은 맛이었다. 돈 주고 사먹는 거라면 안 사먹을 것 같지만.

 

 

 

모아이도 보았다.

 

 

 

하나 하나가 다른 인격을 대변한다는 모아이들은 물론

 

 

 

의외로 이렇게 아름다운 해변도 가진 이스터섬.

 

 

 

어때, 좋지? 빌헬름 군? (마르코에 이어 알 수 없는 빌헬름)

 

 

 

그리고 그냥 마셨다가 맛있어서 놀란 Maracuya 주스. 새콤하다.

 

 

 

마지막 날 오후. 가방이 없어 목욕가방을 백 삼아 지는 해를 곱씹으며 방황했던 아쉬운 발걸음.

 

 

 

그리고 기억에 남는 노래 하나.

 

산티아고를 떠나 이스터 섬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타던 그 날에도 사실 기분이 말이 아니었다. 자꾸 산티아고에서의 그 첫 날, 그 순간을 떠올리며 머릿 속으로 시곗바늘을 되감기 할 뿐이었다. 비행기에 올라 잠이나 자자는 생각으로 모니터 속의 음반을 뒤적이다가 우연히 듣게 된 노래가 Change. 순간, 영문은 모르겠지만 내내 무거웠던 기분이 싱겁게도 뽁! 하고 터져버려 이스터섬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래서 이스터 섬을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을 때도 나는 가장 먼저 이 노래를 다시 찾아 들었다. 이 노래는 나에게 또 한 계절을, 시간을, 공간을 기억하게 할 것이다.

 

 

 

 

다시 Santiago

 

 

아무튼 그렇게 돌아온 산티아고의 공항.

 

나는 이 날 공항에서 노숙이 예정되어 있었다. 다음 도시로 가기 위한 비행기가 새벽 일찍 있어서 시내에 나가 숙박을 하는 건 돈도 시간도 낭비라는 계산에서였다. 몸 뉘일 곳을 찾아 빙빙 돌고 있는데 눈앞에 응? 체스?

 

나보다 하루 먼저 이스터 섬을 떠났던 체스가 여기 있는 것이다.

 

 

너 왜 여기 있어?

 

나 조금 뒤 비행기로 뉴질랜드 가.

 

뉴질랜드?

 

응, 가고 싶어졌어.

 

신기하네. 공항이 이렇게 넓은데, 여기서 우연히!

 

나 대만 돌아가면 호스텔 열 거야. 놀러 와.

 

응, 갈게/

 

 

반가움과 신기함으로 순서 없는 대화를 나눈 뒤 기념 사진을 찍자는 말에 흔쾌히. 그런데,

 

 

 

우리 왜 이렇게 초췌한 거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체스, 말해 봐, 캠핑 힘들었지? 나만 힘들었던 거 아니지 지금? 너무 억지 미손데 ㅠㅠ

 

 

아무튼, 우린 아쉬움을 가득 담아 서로의 여행에 응원을 보내며 헤어졌다. 페이스북 사진 속 체스는 그곳에서도 역시나 여기저기 누비며 즐겁게 지내고 있는 듯 하다.

 

 

 

 

( Calama )

 

 

체스를 보낸 뒤, 단 1분도 잠들지 못하고 비행기로 아침 일찍 도착한 곳은 깔라마. 라는 칠레의 북부 도시다. 산티아고에서의 일만 없었다면, 난 이곳에서 수시로 다니는 아따까마 행 버스를 타고 그대로 쭉 간 뒤, 도착해서 여유 있게 씻고 한숨 자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산티아고에서 일이 벌어졌고 그로 인해 공항에서부터 피곤한 뒷처리에 밤샘은 물론, 이곳 깔라마에서도 해야 할 일이 생겼다. 볼리비아 비자를 발급 받는 일이다.

 

 

남미 국가 중 유일하게 비자가 필요한 볼리비아. 여행을 시작했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이미 받아 두었지만, 여권을 잃어 버렸기 때문에 다시 받아야 했다. 그나마 덜 까다롭다고 해서 물어 물어 찾아간 깔라마의 볼리비아 영사관.

 

 

 

나름 까다롭잖아? 그래도 결국 신청을 하고 6시에 찾으러 오라는 걸, 4시 반 버스로 아따까마에 가야 한다고 사정하여 4시에 찾기로 합의했었다. 휴우.

 

 

그사이 나는 시내를 돌며 그 유명한 깔라마의 마네킹도 보고, 시장 구경도 하고, 우두커니 앉아있자니 밀린 잠이 쏟아져 벤치에 누워 낮잠도 자며 시간을 보내다가 성공적으로 비자를 받아 터미널로 향했다.

 

 

 

깔라마 버스 터미널. 환영하지 마. 갈 거야.

 

 

 

함께 버스를 기다리던 사람들. 예정된 시간 보다 20분 정도 늦게 버스는 출발했다.

 

 

 

 

Atacama

 

 

얼마간 달려 다행히 해가 지기 전, 버스는 아따까마에 도착했다. 칠레 북부의 사막 도시.

 

 

 

안녕하세요, 제가 바로 사막입니다.jpg

 

 

 

그리고 도착한 숙소. 터미널에서 눈빛만으로 서로 한국인임을 알아보고 눈인사를 나누었던 분과 마침 같은 숙소여서 자연스럽게 같이 저녁을 먹게 되었다. 그 분과 함께였던 일본 친구 두 명도 같이.

 

 

 

그리고 다음 날. 모처럼 푹 자고 일어나 풀어본 이스터섬의 흔적들. 중요 물품을 넣어 다닐 가방이 없어 (라는 핑계로) 산 천 가방과, 건조한 사막 투어에 없어서는 안 될 (이라는 핑계로 산) 작은 오일 두 통, 늠름한 빌헬름 군과, 기념 천 팔찌, 숙소를 떠나오며 선물로 받은 모아이 목걸이, 이스터섬 원주민인 라파누이 족에 대한 이야기가 곁들여진 어린이 용 색칠공부 책. 스페인어 공부도 할 겸 (이라는 핑계로) 샀다. 하지만 일찍이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산 그 동화책도 아직 펼쳐 보지 않았다.

 

 

이날은 특별한 것 없이 투어 신청과 다음 도시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며 하루를 보냈는데,

 

 

 

그 사이에 귀찮았던 일이라면, 바로 이 PDI에 다시 갔던 것이다. PDI는 일종의 칠레 경찰청인데, 칠레를 출입하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별도의 영수증을 발행한다. 마트 영수증처럼 하찮게 생긴 이 영수증은 입국과 출국 시 반드시 소지해야 한다. 허나, 산티아고에서의 일로 이 영수증도 잃어버린 나는 공항 PDI에 찾아가 설명을 했고 퉁명스럽게 없어도 된다며 몇 번이고 확인하는 나에게 귀찮은 기색마저 보였으나 이곳에서 버스표를 예매하려니 그게 없으면 절대 안 된다는 것 아닌가. 이봐, 이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결국 아따까마의 PDI에서 영수증을 다시 받아 무사히 버스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가방 하나 잃어버렸는데 성가신 일들은 줄줄이다.

 

 

 

그리고 이튿날부터 부지런히 다녔던 투어. 3일 동안 5개의 투어를 했다.

 

 

 

무지개 계곡. 이건. 역시 팜플렛에 속았다. 아무렴 빨주노초파남보일려고,

 

 

 

이런 광물이 햇빛을 받아 곳곳에서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마치 달 표면 같다 하여 이름 붙여진 달의 계곡. 지구에 어떻게 이런 땅이 있지, 생각했다.

 

 

 

그림 같았던, 미안, 이름이 뭐였더라.

 

 

 

Geyser de Tatio. 무려 새벽 5시에 출발해서 보았다.

 

 

 

그 옆 온천. 나는 너무 추워서 패스.

 

 

 

그리고 너무 귀여워서 위험했던 비쿠냐.

 

 

 

소금호수 가는 길.

 

 

 

소금호수에서 한바탕 물놀이 후,

 

 

 

해가 떨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다같이 피스코 사워를 마셨다.

 

 

 

Piedras Rojas. 거대한 붉은 바위에 둘러싸인 드넓은 호수에는 쁠라멩코가 있었고,

 

 

 

몰랐는데, 이때가 이미 해발 4,300m쯤 이었다고 했다. 생각보다 고산증세가 없어 다행이었다.

 

 

 

하지만, 이쯤부터 어딘지 모르게 나른해 지고 기운이 없고 했던 게 나름 고산증세였다고 한다.

 

 

 

아따까마의 다운타운은 사막의 색이 분명한 곳이었다. 모래 자욱한 거리에 낮은 담장, 둘러보면 있는 것이라고는 투어사와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들이 다였지만

 

 

 

아니, 이렇게 아기자기 알록달록 있으면 그냥 지나칠 수가 없잖아요. 너무했어 정말. 결국 나는 아따까마에서 허리춤에 차는 가방과 배낭 여행자들의 교복인 파자마 바지를 사고 말았다.

 

 

 

 

Salta

 

 

아르헨티나 북부 도시.

 

아따까마에서 이곳까지는 버스로 대략 12시간 정도가 걸렸다. 국경을 넘을 때 2시간 정도 지연되었기 때문이다. 이 루트가 무척 아름답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서 2층 제일 앞좌석을 예매하고는 들떠 있었는데, 아침 출발 버스라는 점을 간과했다. 차고 넘치게 쏟아지는 사막지대의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고산지대를 오르락 내리락하다 보니 멀미에 두통이 파도처럼 들이쳤다 멀어지기를 반복했다. 대관령 덤벼 덤벼.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살타에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집 앞 공원에 앉아 어느 모자가 사이좋게 발 맞추어 굴리는 오리배를 구경하거나,

 

 

 

또 어느 공원에 앉아 얼마를 내면 주는 팔레트와 붓을 받아 들고 취향에 따라 피카츄며 엘사며 드레곤볼을 열심히 채색하는 아이들을 구경하거나,

 

 

 

광장의 벤치에서 떨어지는 오렌지를 하나 낚아챌 요량으로 기다렸다 실패하고는

 

 

 

어스름해 질 무렵, 사람들과 발 맞추어 숙소로 돌아오곤 했다.

 

 

 

물론, 나와 요리교실을 열었던 훌리오 씨와 케이블카를 타기도 했고

 

 

 

지역 전통 공연인 페냐를 보러 가기도 했었다. 흥을 주체하지 못하고 무대로 난입한 꼬마. 그런 시간들을 보내며 두 달 가까이 정신 없이 오갔던 아르헨티나와 칠레의 여정이 끝났구나,

 

 

 

 

하고 생각했다.

 

 

 

 

( La Quiaca / Villazon )

 

 

살타에서 우유니까지 가는 길은 녹록치가 않았다.

 

1. 살타-라끼아까 버스 이동 (약 7시간)

2. 접경지대에서 아르헨티나 출국 수속 및 볼리비아 입국 수속

3. 도보로 국경(라끼아까에서 비야손) 이동

4. 비야손-우유니 기차 이동 (약 8시간)

 

일단, 살타에서 밤 10시 버스를 탔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어 라끼아까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고지대인데다가 새벽이라 몹시 춥고 숨이 가빴다. 출입국사무소까지 택시를 탈까 하다가 걸어서 15분이라는 말에 택시비를 아껴 볼까 하고 걸어갔던 것이 화근이었다. 또 소매치기를 당한 것이다. 아니, 이것을 뭐라고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속임수에 넘어가 돈을 빼앗겼다고 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아무튼 긴 새벽이 지나고, 도보로 국경을 이동하며 바라본

 

 

 

악몽같았던 그 곳. 남은 힘을 쥐어짜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제

 

 

 

아르헨티나를 떠나

 

 

 

볼리비아에 왔다.

 

 

우유니로 떠나는 기차는 오후에 있었다. 이르지만 일단 기차역을 향해 걸었다. 문 열기를 기다렸다 일등으로 들어간 기차역 대합실에 무거운 짐들을 내려 놓고, 제일 먼저

 

 

 

젖은 운동화와 양말부터 벗었다. 돈을 빼앗겼던 그 곳으로부터 벗어날 때 강을 건너야 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젖은 발도 시려웠지만

 

 

 

맨발은 더 시려웠다. 안에 껴 입은 쫄바지를 아래로 끌어당기고 잘 때만 신는 덧신을 꺼내 신은 뒤 크록스를 신고 짐을 부치자 마자 시내로 향했다. 햇볕 따뜻한 광장에 앉아 있다가, 환전을 하고, 그 와중에 배가 고파 점심을 먹었다. 맛이 없었다.

 

 

 

아주머니와 자꾸 눈이 마주 쳐 민망해서 사 마신 주스. 점차 안정이 되는 듯 해, 주스를 다 비우고 시장에 가 3개들이 양말을 한 세트 사서 보란듯이 두 짝씩 껴 신고는 다시 기차역으로 향했다.

 

 

 

우유니로 가는 기차. 밤 12시 30분 도착 예정이었지만 훌쩍 넘겨 새벽 2시에 도착했다. 어디쯤이던가, 기차가 별안간 뒤로 막 갈 때 알아봤다. 12시 30분도 충분히 미안한데 2시라니. 예약도 하지 않고 찾아가 벨을 누른 나는 두 배로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방이 있는지 물었고, 분명 자다 일어났을 텐데도 귀찮은 내색 없이 따뜻하게 맞아 준 구스타보 씨의 숙소에 냉큼 들어가 샤워는 사치라며 대충 씻고 누웠다.

 

 

그리고 늘 그렇듯이 이튿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특히, 이번에는 더욱 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도저히 그럴 기력도 없고 자꾸만 드는 자괴감 같은 것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고 싶었던 우유니였는데 눈에 들어오는 것이 없었다. 종일 누워 있다가 이래서는 안 될 것 같아, 부랴부랴 나가서 투어신청을 대충 하고 들어왔다.

 

 

 

다음 날 아침 투어사 앞에 가보니, 모두 한국인으로 구성된 팀에 배정되어 있었다. 이렇게 우르르 한국인이라니 처음있는 일이었다. 덕분에

 

 

 

 

 

 

 

 

모처럼 까불까불 사진도 꽤 찍었다.

 

 

 

그러는 사이 한쪽에서는 해가 지고

 

 

 

반대쪽에서는 달이 뜨고 있었다.

 

 

신비롭고 아름답고 경이로운 곳이었지만 더 이상의 투어는 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좀 쉬었다.

 

 

 

 

Sucre

 

 

하얀 도시 수크레. 우유니에서 버스로 8시간 거리에 있다.

 

 

 

터미널이랄 것이 따로 없어 티켓을 산 버스 회사 사무실에 앉아 시간이 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좀처럼 버스가 안 보이는 것이다.

 

 

 

그 때, 별안간 차장(으로 추정되는) 아저씨께서 짐들을 마을 버스 같은데에 막 싣는 게 아닌가. 버스가 안 보인게 아니라, 아까부터 서 있던 이 조그만 버스가 내가 타야 할 버스였던 것이다. 

 

 

 

배낭은 캠핑 가는 기분으로 저 위에, 그리고 부웅 부웅 하염없이 달렸다.

 

 

 

어쨌든 잘 도착했다. 아주 시끌벅적하기도 하고,

 

 

 

아주 한적하기도 하며,

 

 

 

휴양지인가 싶다가도,

 

 

 

삶이 묻어있는 곳.

 

 

 

날이 저물면 언덕 위 높은 곳에 올라

 

 

 

함께 일몰을 바라보고,

 

 

 

돌아보면, 하교길 광장에 몰려 나와 공을 차거나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이 있는 곳.

 

 

머무는 일주일 동안 누워 있었던 이틀을 제외하고는 매일 매일 모든 것이 적당했다. 매연은 좀 심하지만. 오늘 저녁 마지막으로 동네를 한 바퀴 돌아 보며, 여기서 살라고 하면 살 수 있을까, 여기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물론 그런 제안을 한 사람은 없지만.

 

 

 

 

내일, 산타 크루즈라는 도시로 간다. 이미 볼리비아 버스를 맛 본 나는 납득할 만한 금액의 비행기표를 샀다. 휴우 다행이야.

 

 

 

 

오늘의 스페인어

 

Estoy mejor.     /     좀 괜찮아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