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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문장은 마치 그러기로 한 듯이

 

 

 

····· 이런 말을 덧붙이자. 언젠가 기타노 다케시는 말했다. "5천 명이 죽었다는 것을 '5천 명이 죽은 하나의 사건'이라고 한데 묶어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그게 아니라 '한 사람이 죽은 사건이 5천 건 일어났다'가 맞다." ······ 저 말들 덕분에 나는 비로소 '죽음을 세는 법'을 알게 됐다. 죽음을 셀 줄 아는 것. 그것이야말로 애도의 출발이라는 것도.

 

 

 

 

 

 

 

 

 

 

 

······ 인간은 자신의 불행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견디느니 차라리 어떻게든 의미를 찾으려 헤매는 길을 택하기도 한다. 내 아이가 어처구니없는 확률(우연)의 결과로 죽었다는 사실이 초래하는 숨막히는 허무를 감당하기보다는, 차라리 이 모든 일에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섭리가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 살아 있는 자를 겨우 숨쉬게 할 수 있다면? ······ 나는 이유도 모른 채 아이를 잃은 부모가 갑자기 독실한 신앙인이 된다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신형철 평론가의 새 책 『인생의 역사』를 읽고 있다. 그가 '겪은' 시와 그 시에 새겨진 삶의 기록에 관한 책. 저릿했던 부분을 옮겨 적어본다. 반복되는 분노와 끊이지 않는 큰 슬픔 앞에서 어떤 문장은 약속한 것처럼, 마치 그러기로 한 듯이,

 

나타나준다.

 

그러면 그 힘으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바람과
몇 개의 다짐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