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평온하지 못하던 어느 날
김보희 화가의 출간 소식을 접했다.
그의 첫 그림산문집의 표지를 뒤덮은 바다.
바다에 남다른 애정이 있지 않아도
바다를 보면 역시
와-아 바다다-아
하게 되는 것은 왜일까.
바다가 코앞인 곳에 사는 사람도 그럴까.
매일 바다를 봐도 매일 새롭게
와-아 바바다-아
그럴까.
3년 전 여름,
징그럽게 무더웠던 한여름에
서울에서 그의 전시가 열렸었다.
땡볕 아래 하염없이 기다렸던 기억.
그냥 갈까 하고 30번 정도 망설였던 기억.
조르륵 흐르는 땀과 함께 입장했던 기억.
마침내 그의 작품들을 마주했던 기억.
감탄 또 감탄
다음 전시도 꼭 가야지 다짐했던 기억.
그리고
붐비는 인파 속에서 찍었던 한 장의 기억.
그로부터 2년 뒤 가을,
이번에는 제주에서 전시가 열린다니
이건 참을 수 없지, 가야지,
해서 다녀왔었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날씨에
적지도 많지도 않은 적당한 사람들
전시 제목이기도 했던 이 작품은
이렇게나 울창한 초록이고
그가 그려내는 바다는
이렇게나 무궁무진하다.
바다에 관한 이야기
나는 그 바다들을 보면서
그래,이런 바다 본 적 있었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린 바다는 본 그대로를 그린 것이 아니다. 보고 싶어 하는 바다를 그렸다. 푸른색 바다. 초록빛 바다. 지금이라도 당장 바다에 가보면 그림 속의 그 색상이 아니다. 회색 바다도 있고, 분홍빛 바다도 있고, 검푸른 바다도 있다. 매일 다르고 매 시간마다 다르다. 그림 그릴 때 내가 어떤 바다를 그리고 싶어 하는가가 중요하다.···
- 김보희, 『평온한 날』 중에서
나아가, 바다를 포함한
자신의 작품 전반에 대해서도
···그러니까 내 그림은 풍경 그대로가 아니라 내가 보고 상상한 풍경이다. 예술은 모사가 다가 아니다. 모사는 시작일 뿐이다.···
- 김보희, 『평온한 날』 중에서
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어쩌면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그 바다를 보고
그래,본 적 있었지
하고 내가 느낀 기시감은, 그가 바란 풍경과 내가 바란 풍경이 맞닿은 우연한 순간 아니었을까 생각하면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해진다.
물론 정말 본 적 있는 바다일지도요.
👉🏼👈🏼
그 앞의 나.
이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들어
한동안 프로필 사진으로 해두었었다.
빨간 컵에 관한 이야기
그의 작품을 보다 보면
곳곳에서 빨간 컵을 찾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저기 저 테이블 위에.
어디, 확대해 볼까?
좀 더?
이렇게.
보다 보니 눈에 띄길래
마치 월리를 찾는 심정으로
사진을 찍어 두었었는데
···우리 집 정원을 그린 작품들에는 가끔 빨간 커피 잔이 보인다. 사람들은 그림을 보고 이 잔은 누구 것이냐고 물어오곤 한다. 그림에 나를 직접 그려 넣을 수는 없어서, 나도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빨간 커피 잔으로 은유하여 드러낸 것이다.···
- 김보희, 『평온한 날』 중에서
아하!
하고 궁금증이 풀렸다.
레오에 관한 이야기
빨간 컵만큼
어쩌면 빨간 컵보다 자주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레오.
제주의 전시를 보러 갔을 때
별관에서 특별 전시를 진행했었는데
해맑게 뛰어놀던 모습을 떠올리며
레오가 어떻게 그의 가족이 되었는지
그에게 레오는 어떤 존재인지
레오와 함께 보내는 하루는 또 어떤지
책에 실린 이야기를 읽다 보니
어쩐지 뭉클.
그의 글과 그림 덕분에
오랜만에 좋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조금은 평온해진 것도 같고.
바다가 보고 싶은 것도 같고.
그래서
부산에 다녀오겠습니다.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런데
이런 식이면 곤란해.
이렇게 비협조적이면 곤란하다고.
그렇지만
다녀오겠습니다.
어떻게 되겠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