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드디어 쓸 결심
🔥
지난 해 말, 발리에 다녀왔었다.
보름치 짐.
최소한으로 짐 꾸리기에 성공하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다.
언제부턴가
(라고 썼지만 남미 여행 이후로)
짐 쌀 때면 늘 기록을 깨는 심정으로
진지하게 도전하고 있다.
아무튼 출발.
발리는 여기,
인도네시아 남부에 있는 섬이다.
작아 보이지만 제주도 면적의 3배라고.
인도네시아도 정말 크구나.
하여 계획한 여행 동선.
이른바 이넓은발리를보름동안다보는건무리니까한곳에만집중할게요 작전이라고 했지만 엄청더울텐데그럼돌아다니기귀찮을게분명하니온힘을다해움직이지않겠어요 작전이라고 해도 무방한 그런 우붓 집중 공략 동선을 짰다. 그 와중에
공항 근처 지역을 쿠션 삼아 찍고 찍을 예정. 공항에서 우붓까지는 차로 1시간 30분 안팎의 거리인데 한참 비행기 타고 와서 또 차 타기 싫지 싫어.
그래서
평범하게 비범한 발리
가 아니라
평범하게 비범한 우붓
이 되었다는 이야기.
르기안 Legian
첫 숙소에 도착했다.
문을 열면 이렇게 초록초록했지만
너어어어어무 더워서 열어 두지 못했고,
작고 귀여운 테라스도 딸려 있었지만
정말이지 너어어어무 더워서 이용하지 못했다.
그래도 어느 오후,
큰맘 먹고 수영(의 탈을 쓴 물장구) 시도.
또 틈틈이 시험공부도 시도.
마지막 학기, 마지막 시험이 코앞이라
교재와 노트북까지 챙겨가
그렇게 몇 시간을 보냈더니
어느새 홀랑 타서
원치 않는 턱받이와 팔 토시를 선물 받음.
드럭 스토어 몇 군데를 돌아 산 애프터썬.
효과는 별로 없었지만
안 바르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서
여행 내내 부지런히 발랐다.
하지만 끝내 효과는 없었던 걸로.
여기는 숙소 근처의 르기안 비치.
해가 저무는 모습을 봤다.
분명 그때는
에-이 제주도 바다보다 별로네
하면서 아쉬워했는데
뭐지?
이렇게 보니까 또 예쁘다?
우붓 Ubud
펭귄을 닮은 귀여운 우붓.
위에서 아래로 10km가 채 되지 않는 우붓이지만 굳이 세 군데 숙소에서 묵었다. 가급적 왔다 갔다 하지 않고 숙소 근처에서 사부작사부작 지내고 싶었기 때문이지요 네네.
먼저, 다운타운에 있는 숙소.
홈스테이 형태의 숙박시설이다.
입구에 들어서면 마치 비밀정원으로 이어질 것만 같은 좁은 길을 걷게 된다. 양옆으로는 방들이 있고 각각의 방 앞에는 또 테라스가 있어 원하는 시간과 메뉴를 적어 탁자 위에 올려두면 다음날 아침
이렇게 가져다주시는데
새소리 + 나무 + 커피라니
✌🏼눈물콧물기절이야✌🏼
한바탕 시원하게 비가 쏟아졌던 오후에는
내 주먹 반만한 달 선생님이 방문하셨는데
이건 또 이것대로
✌🏼눈물콧물기절이야✌🏼
또 이렇게 낮이나
밤이나 마주치는
토 선생님들까지 너무 귀여워서
어쩔 거야, 나 몰라, 아주,
✌🏼눈물콧물기절이야그냥✌🏼
소박하고 정겨운 숙소다. 무엇보다 식당이나 카페를 취향껏 골라 다니기에 딱 좋은 위치도 큰 장점. 우붓에는 이런 형태의 숙박시설이 많다고 한다. 홈스테이라고 해서 주인 가족들과 함께 같은 공간을 공유하는 것은 아니고, 가족 단위로 운영하며 식사와 숙박을 함께 제공하는 형태의 가성비 좋은 숙박시설이랄까. 그래서 이렇게
식당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는 사실을 이튿날 알게 되었는데
무려 이 주변 맛집이었다니.
그래서 그날 저녁도 먹고
그 다음날 점심도 먹었는데
이때 음식에서 머리카락이 나와
더 이상은 가지 않았다.
이게, 이제, 그러니까 이 숙소의 단점이 되겠는데요. 소박하고 아기자기한 분위기, 편리한 위치, 친절한 사람들 모두 좋았는데 위생이 조금. 아니 제법... 엄청 지저분하냐 하면 그건 아닌데 깨끗하냐 하면 그것도 아닌... 또르륵...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숙소를 고를 때 ①침구, ②화장실이 깨끗한지에 민감한 사람(=나) 기준에서 그렇다는 것이고, 바닥에 먼지가 엄청 굴러다닌다거나 하는 정도는 아니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를 수는 있다.
어쨌든 이곳에 머물면서도
대체로 시험공부를 하고
때때로 빨래방에 오가며
때 되면 밥도 먹고 그랬다.
아!
까먹을뻔했던 마지막 과제도 하고,
아침 운동도 했다고요.
한 번이지만.
아침 6시에 일어나 다녀온
짬뿌한 릿지 워크.
잘 가꾸어진 하이킹코스이지만
무방비로 걷기에는 너무 땡볕이라
이른 아침에 찾는 사람들이 많다.
걷다 보면 나오는 유명한 마사지 숍.
예약을 시도해 봤으나
이미 몇 주 치의 예약이 완료된 상황.
이곳을 알려준 친구 말에 의하면
땀 한 바가지 흘리고 걸어가
마사지 받으면 거기가 천국이라던데.
친구야, 다시 생각해 봐
마사지 받고 내려올 때 땀 두 바가지 예약이야.
하지만 꼭 마사지가 아니더라도
비교적 짧고 쉬운 코스에 풍경도 예쁘니까
근처라면 가 보기를 추천.
그리고 우붓 다운타운의 명소.
적어도 한국인 한정 명소.
스타벅슼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긴 했지만 사실 정말 명소다.
왜냐하면 여기
뒷마당 좀 보세요 여러분?
굉장히 굉장하죠?
며칠 뒤
하이킹 다녀오는 길에 다시 들러 보았는데
역시나 대단히 대단했다.
이날 오후, 얼마간 달려
우붓 북쪽의 새 숙소에 도착했다.
굳이 좀 더 올라온 이유는
뜨갈랑랑 때문이었다.
'랑'랑이라고도, '랄'랑이라고도 하는데
표기가 저마다 달라 헷갈리지만
계단식 논 지역의 이름이다.
입장료를 내야 이 구역 자체에 들어갈 수 있고,
이렇게 논길을 따라 트레킹도 가능한데
좀 걸어볼까 하고 들어가자마자 포기했다.
너어어어어어무 덥더라고요.
그저 먼 발치에서 커피와 함께
경치만 감상했다.
여기 오면 다들 탄다는 그네고 뭐고
너어어어어무 더워서 패스.
정말 한적하기 그지없던 마을.
어찌나 한적한지
몇 개 없는 식당이나 카페도
막상 가보면 문을 닫은 곳이 많았고
이리 봐도
저리 봐도
심심 그 자체.
그 많던 식당과 카페도 손으로 꼽을 수 있고
큰 시장이나 마트, 빨래방, 환전소도 없어서
덕분에
숙소 수영장도 며칠 동안 전세를 내고
갔던 식당도
이 자리
저 자리
바꾸어가며 가고 또 가고,
갔던 카페도
이 자리
저 자리
바꾸어가며 가고 또 갔다.
이날은 오래 있느라
추천 메뉴로 한 잔 더 시켰는데
어머? 맛있다?
이름이... 코코넛 뭐였던 것 같은데요
또,
문득 익숙한 음악이 들려
뭐지? 했는데
92914의 Okinawa였다.
좋아하는 한국 뮤지션의 곡이
여기서? 갑자기? 싶고,
눈앞의 풍경도 너무 평화롭고,
아아 좋다 좋아
시험공부 중만 아니라면 더없이 좋겠다
시험만 없다면 참 좋겠는데
하면서 복에 겨운 오후를 보냈다.
그러고 보니
이 여행에서 좋은 음악을 많이 만났다.
숙소 로비에서,
우연히 찾은 카페에서,
또 식당에서,
몇몇 곡은 마음에 쏙 들어서
바로 검색해 플레이리스트에 넣어 두고
한국에 와서도 한참을 들었다.
언젠가 인도네시아를
다시 찾게 된다면
작은 공연을 보러 가도 좋겠다
생각하며
매일 아침을 먹고
산책을 하고
공부도 했다가
넋 놓고 비 구경도 했다가
비가 그치면
슬며시 나와
달밤의 산책. 그리고
번번이 고백해마지않는
분홍색 하늘도 만끽했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전기가오리 철학 수업을 듣는
이 건전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어디 단조로운 일상 보내기 대회 나가면 최소한 입선은 하지 않을까 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 여기서 잠깐, 전기가오리가 뭐죠?
운영자의 말을 빌리면 "사회정치적인 주제의 철학적 측면에 주목하고, 반엘리트주의를 주창하며, 철학을 둘러싼 격차 문제의 해소에 기여하고자 하는 학문 공동체"인데, 공부 모임이기도 하고 출판사이기도 하다. 언젠가 소개하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미루다 보니 이렇게 되어 유감이지만 정말 언젠가는 제대로 소개하고 싶다. 혹시 여기까지 읽고 흥미가 일어 궁금함을 못 참겠다 하는 사람은
▲
여기를 둘러 보시죠 롸잇 나우!
물론 그런 중에도
태양이 작열하는 한낮에
낮술 공부는 못 참지.
불편하지만 그래서 좋았던
진짜 진짜 별 볼일 없던 동네.
어쩐지 예전에 다녀온
일본의 요론(与論) 섬이 떠올랐던 곳.
그곳을 떠나 다시 아래로 내려갔다.
크고 좋아 보이는 호텔로.
사실 가는 곳마다 위생 문제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터라
나름 알아보고 예약한 곳이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여기도 좀
실패.
참 희한한 것이
이렇게 사진으로 찍으면 대체로
좋아 보이고 깨끗해 보이는데
세면대 옆 휴지를 들추면
개미 수십 마리가 흩어진다거나
분명 빳빳한 새 베갯잇인데
땀 냄새가 진동한다거나
내 방보다 큰 화장실에 걸린 보송한 새 수건에
커다란 얼룩이 묻어있는 건.
내가 유난 떠는 거 아니죠 엉엉
그리고 또 희한한 것이
여기만 유독 그런 게 아니라 여행 내내
대체로 그랬다는 점.
그것이 이 여행의
유일하지만 치명적이었던 단점이었다.
그래도 이렇게 높고 커다란 창문 밖으로
이런 풍경을 하염없이 볼 수 있다니
게다가 이렇게 누워서 말이야
하고 생각하니
뭐... 그럭저럭 행복한데?
하고 별안간 현실에 순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러는 사이
한 과목 한 과목
기말고사는 무사히 마쳤지만
후유증으로
극강의 나태함이 찾아와 점점
집 앞 편의점에서 간단히
사다 먹기 시작. 그래도 여전히
빨래방에 다녀오는 일과,
커피를 마시러 가는 일만은
빼놓지 않았다.
사진 속 커피는
카페 피손에서 마셨던 커피.
예뻐서 그런지
늘 기다리는 사람들로 줄이 긴 곳이다.
커피는 뭐 그럭저럭.
익숙한 맛.
원래는 이렇게 마시고 나면
바닥에 커피가루가 남는 것이
발리식 커피라고 하는데
여행 중 마셨던 발리식 커피는
대체로 고소한 편이어서
산미를 선호하는 나에게는 아쉬웠다.
그렇지만 발리에는
카페가 정말 정말 많고
원두도 정말 정말 많을 뿐더러
여행자도 정말 정말 많은 관광지라
원한다면 누구라도
충분히 입에 맞는 커피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가 찾은 곳은 바로 여기, 무슈 스푼.
베이커리가 맛있다고 해서 왔는데
커피도 딱 좋은 산미로 맛있었다.
계산도 이렇게 귀엽게 한다고요.
👍🏼 추천 👍🏼
📌
추천한 김에 하나 더
여기, 투키스 코코넛 숍.
코코넛 디저트 가게인데
이 코코넛 아이스크림 뭐죠?
달지 않은데 왜 달죠?
질리지 않는 맛있는 맛이었다.
받자마자 한 컵 뚝딱.
👍🏼 역시 추천 👍🏼
📌
(다운타운에도 한 곳 더 있음)
커피 나왔고 아이스크림 나왔는데
식사 안 나오면 서운하니까
마지막으로 여기, 피자 컬트.
수제 맥주가 유명한 피자가게다.
매일 다양한 프로모션도 진행되는데
이날 마침 반값 피자 프로모션이 있다길래
이게 웬 떡이냐 했지 뭐람?
진저 비어는 너무 달고 매웠지만
가지 피자
넌 정말 최고였다.
😭
혼자 한 판을 다 먹을 수 없어서
분한 마음으로 포장을 해왔는데
이거야말로 웬 떡이냐 했지 뭐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떡인 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럼에도 추천 👍🏼
📌
이렇게
위대한 발견 우붓 편을 마치고
정말 아래로.
꾸따 Cuta
공항과 가까운 꾸따에 왔다.
비록 다음날이면 떠나겠지만
맛집도 가고, 카페도 가고,
바다에서 일몰과 함께
낭만적인 마지막 밤을 보내야지
했는데
남은 거라곤 어쩐지
배달음식과
편의점 맥주,
그리고 빠더너스가 함께한
사진 두 장 뿐.
눈 떠보니 다음날이길래
자연스럽게 공항으로 향했다.
호치민 Hô Chí minh
호치민에서의 경유 시간이 길어
레이오버를 하기로 했다.
예전에는 공항에서도 잘 잤는데
이제는 비행기 타고 내리는 일만으로도
퀭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
레이오버 하지 않을 수 없는 얼굴.
잠만 잘 곳이라 공항 근처의 작은 호텔을 예약했는데 이번 여행에서 가장 깨끗하고 쾌적한 호텔이라 잠만 자기엔 아까울 정도로 좋았다. 그래서 잠시 외출.
응?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호치민에 사는 지인을 만나러 갔었다.
허겁지겁 저녁 식사를 끝내고
근처에서 맥주만 한잔.
오랜만에
길게 수다도 떨고 놀고도 싶었지만
퀭한 내 몰골과
내일도 아침부터 바쁠 지인의 일정, 그리고
생각보다 일찍 문을 닫는 가게들 때문에
그러지 못해 아쉬웠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한 다음날 밤
인천공항에 도착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지하 1층으로 달려가
순부두찌개에 아바라 끝장내기.
아쉬움이 다 뭐죠...
너무 신바람 나셨는데요...
밤 9시가 넘었는데요...
라고 했던 게 벌써 네 달 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