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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에 대하여

지난 10월, 첫 시집 『책기둥』으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문보영 시인이 남긴 인상적인 수상소감을 기사를 통해 접했다.





"사람들은 시가 쓸모없다고 말하는데 그 말은 기분 좋은 말입니다. 저는 평소에 제가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을 자주 하는데, 내가 아무리 쓸데없어봤자 시만큼 쓸모없겠냐 싶고 그런 생각을 하면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입니다."





기사를 읽자마자 생각난 정말 좋아하는 드라마.





출처: 블로그 http://akaizang.tistory.com/410


이미 해결된 사건을 33분 동안 어떻게든 질질 끌어보겠다고 하는 의욕 충만한 탐정수사물로, 취향에 딱 맞는 유머코드도 그렇지만 매회 같은 패턴 속에서 삭삭 변주되는 초반 2-30초가량의 장면은 볼 때마다 반할 수밖에 없다.





발췌: 후지TV 33분 탐정 1화 중에서





발췌: 후지TV 33분 탐정 3화 중에서





발췌: 후지TV 33분 탐정 4화 중에서





발췌: 후지TV 33분 탐정 6화 중에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정말이지 이것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사실 정말 쓸모없는 장면이지 않은가. 없다 해도 전혀 상관없을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착실하게 연출될 뿐만 아니라 회를 거듭할수록 위트있게 진화한다.





이 드라마는 2008년에 방영되었는데, 출연했던 한 배우가 제작발표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이렇게까지 바보 같은 것을, 몇십 명의 어른들이 땀을 흘려가며 진지하게 찍고 있습니다. 이 상황만으로도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다고 확신했습니다."





밥이나 집이나 옷은 분명 쓸모가 있다. 없으면 불편하고 때로는 없어서 삶이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시(詩)가 없다고 해서 불편한 것은 아니다. 커피를 마시기 위해 매번 구슬을 또로록 굴리는 장면이 빠진다고 해서 당장 목숨이 어떻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도 말이지 있으니까 감동적이잖아, 있으니까 웃기잖아, 랄까.





누군가가 쓸모없는 것에 기울인 그 애정으로 세상은 이만큼 깊고 넓고 다채로워졌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