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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지도 검지도 않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자서전


이라는 부제가 달린 그의 책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TV 다큐멘터리 연출가로 시작해 영화감독으로도 꾸준히 자신의 세계를 표현하는 그의 작품에 흐르는 일관된 정서를 좋아한다. 그것은 중앙이 아닌 그 언저리, 바로 앞이 아닌 저 너머를 바라보는 시선 같은 것인데 그래서 궁금했다. 감독으로서 그리고 인간으로서 그의 세계는 어떤 모양을 하고 있을까.






처음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안 것은 영화 <아무도 모른다>를 통해서였는데, 이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던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부분이 무척 흥미로웠다.





번째 작품 <아무도 모른다> 1988 도쿄 도시마 구에서 일어난니시스가모 아이 방치 사건 제재로 각본을 썼습니다(중략그러나 그런 일련의 보도를 접하며 제게는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어째서 소년은 동생들을 버리고 집을 나가지 않았던 걸까요? 어느 , 아동상담센터에서 보호 중이던 여동생이 중얼거린오빠는 다정했어요라는 한마디를 신문 기사 제목에서 보고 안에서 싹텄던 의문은 상상의 날개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중략방치된 6개월 동안 그들이 풍경은 잿빛지옥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들 생활에는 물질적 풍요와는 다른 어떤풍요로움 존재했을 테고, 남매들 사이의 감정 공유가, 기쁨과 슬픔이, 그리고 그들 나름대로의 성장과 희망이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우리는 아파트 밖에서지옥 이야기할 아니라, 전기가 끊어진 아파트 안에서 그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험했을풍요로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상실되었는지를 상상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아무도 모른다> 국제영화제에서 80번에 가까운 취재를 받았는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당신은 영화 등장인물에게 도덕적 판단을 내리지 않습니다. 아이를 버린 어머니조차 단죄하지 않지요라는 지적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영화는 사람을 판가름하기 위해 있는 아니며 감독은 신도 재판관도 아닙니다. 악인을 등장시키면 이야기(세계) 알기 쉬워질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기에 오히려 관객들은 영화를 자신의 문제로서 일상으로까지 끌어들여 돌아갈 있게 되지 않을까요......”  생각은 지금도 기본적으로 변함없습니다. 영화를 사람이 일상으로 돌아갈 , 사람의 일상을 보는 방식이 변하거나 일상을 비평적으로 보는 계기가 되기를 언제나 바랍니다.










이런 배경을 알리 없던 그때의 나에게도 영화는 매우 강렬해서 이후로도 그의 작품들을 쭉 즐기고 있는데, 치열하게 고민한 뒤 비로소 한 발 내딛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늘 받는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들,





"그러나 대부분의 미디어는 죽음의 사적인 부분, 자살에 대한 충격이나 유족의 슬픔을 취재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개인적인 슬픔이 임팩트가 강하고, 생각 없이 스토리를 구축할 있기 때문입니. 하지만 텔레비전 저널리즘(혹은 다큐멘터리) 본디 현상의 공공적, 사회적 측면에 눈길을 줘야 하지 않을까요."


"이를테면 2009년에 시작된 배심원 제도도 아직 문제가 있습니다. ‘나도 어느 가해자가 가능성이 있다 인식을 희박하게 지닌 재판에 임하면, ‘내가 피해자라면 사람을 용서할 있을까?’라는 피해자 입장의 발상으로 밖에 판단할 없습니다. 만약 그런 생각 한편에우리는 가해자를 낳은 사회에서 살고 있다 의식이 균형 있게 존재하면, 배심원 제도는 우리와 사회의 관계를 생각하는 있어서 우리를 성숙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지 않을까요(중략세상의 선악을 결정하는 것이 법률밖에 없어서 법률과 모순되는 윤리관이 생겨나지 못하는 편향된 사회라면, 일반 시민이 재판에 참여하는 것은 더욱 불균형을 조장할 뿐이지 않을까요. 저는 그것이 두렵습니다."


"전쟁을 어떤 식으로 다음 세대에게 설명할지를 결정할 피해자 쪽으로 기울어진 이야기가 비중을 차지하면 거기서 사고가 멈추어 일종의 배타주의와 적대주의만 부추기게 되지 않을까요."


"특히 아이가 죽는 이야기인 만큼 아역을 괴롭거나 슬프게 만들어서 눈물을 찍는 규칙 위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거라면 팔을 꼬집어서 울리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되고 맙니다. 저는 그런 짓은 하기 싫습니다."


"만약 영화에 공통된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과도 바꿀 없는 소중한 것은 비일상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 속에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하나 차이가 있다면, 텔레비전 작품을 만들 때는 드라마든 다큐멘터리든공공(公共) 참가한다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중략그러므로 원래라면 영화의 저작권은 감독에게 있어야겠지만 텔레비전, 다시 말해 방송의 경우 저작권은 없어도 좋다고 생각합니다(중략방송 업계는 모두 그래야 하며, NHK 특히 그래야 합니다. 수신료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송하면서 자료를 쓰려고 하면 터무니없는 돈을 요구하는 잘못된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전혀여러분의 NHK’ 아닙니다."











그리고 또, 섬세하지 않으면 영화를 만드는 일은 절대 할 수 없겠구나 생각한 부분도 있었는데





"괴담은 디지털 촬영에는 가장 적합하지 않은 장르입니다. 어두운 부분이 새까매지지 않고 아웃포커스도 표현하기 힘듭니다. 사용한 기계는 캐논의 EOS 5D Mark ll라는 디지털 카메라였는데, 비교적 심도가 얕아서 아웃포커스는 있었습니다. 괴담에서는 어두운 부분을 어떤 식으로 남길지가 중요하기 때문에 굳이 도전해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장면. 일본 가옥의 방에 모기장을 치고 어두운 조명 속에서 부부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장면을 찍었는데, 유감스럽게도 장면은 주위를 어둡게 하고 봐야 아름답습니다. 밝은 장소에서 보면 텔레비전 화면에 자신이 있는 곳이 비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시청자에게 '어둡게 하고 보세요라고 말할 수도 없으니 부분은 조금 난처했습니다."


"무언가를 가만히 바라보는 표정을 바라보는 곳을 비추지 않고 찍으면, 관객은 배우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도 포함하여 프레임 바깥쪽을 상상하며 인물의 내면으로 문득 다가갑니다. 그래서 아이를 찍을 가장 중요한 연출은 아이를 어디에 둘지 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이는 어른 배우도 마찬가지일지 모릅니다.)"


"한번은 고쿠라쿠지에서 무가의 저택 같은 오래되고 훌륭한 일본 가옥을 로케이션 헌팅했는데, 인도인이 거기서 훈도시(일본의 전통 속옷-옮긴이) 팔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일본의 훈도시가 얼마나 훌륭한지에 대해 이야기하며 입어 보라고 하기에 위로긴 했지만 훈도시를 입고 돌아왔습니다. 희한한 로케이션 헌팅이었습니다. 이처럼 얼핏 쓸모없게만 느껴지는 사건도 어쩌면 다음 작품에서 쓰임새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즐기고 있습니다."


"기뻤던 점은 실제로 제가 스물여덟 살까지 살았던 도쿄 기요세 시의 아사히가오카 단지에서 촬영할 있었던 것입니다. 동은 달랐지만 제가 살던 곳과 같은 개짜리 집이 우연히 비어 있어서 그곳을 빌려 촬영할 있었습니다. 제가 자란 집의 배치를 떠올리며 각본을 썼기 때문에 실제로 같은 크기의 방에서 배우가 움직이자 대사의 길이나 동작이 전혀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이를테면 베란다에서 다다미방으로 돌아오는 동안 어머니가 이불을 짊어지고 하는 대사가 이동 거리에 맞았습니다.

<걸어도 걸어도> 때는 이야기 자체에는 어머니의 에피소드를 상당히 많이 넣었지만 촬영은 의사 선생님의 집을 빌려서 했기 때문에, 동선을 처음 확인했을 대사는 부엌에서 거실까지 차를 옮기는 거리 안에 못한다라는 식으로 어긋남이 생겨서 현장에서 수정했습니다."





이런 섬세함에 치열함까지 더해, 그는 쉼 없이 희지도 검지도 않은 회색 세계를 그려나가고 있다. 더불어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그는



"지금 새로운 작품의 각본을 쓰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홈'에서 사회로 시야를 조금 더 넓혀서 법정물에 도전해 보려 합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는 그 약속을 지켜




영화 <세 번째 살인>으로 돌아왔다. 역시 굉장했다.





그리고 며칠 전,


칸영화제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새 영화가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비키 가족>. 빨리 보고 싶다, 빨리빨리. 





또,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책표지의 옮긴이 이름이 아주 살짝 기울어져 있는데










(맞추고 싶어! 기울어진 쪽 올려주고 싶다곸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