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이었다. 한 시인의 죽음. 내가 아는 죽음은 아직 어느 해 어느 계절 몇 개의 장면으로만 요약되어있는데. 두 시가 넘어 겨우 잠이 들었지만 다섯 시에 한 번 여섯 시에 또 한 번. 그렇게 일어나 그녀의 시집을 한 권 가방에 넣고 이른 아침 지하철을 탔다.
빙하기의 역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우리는 만났다
얼어붙은 채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내 속의 할머니가 물었다, 어디에 있었어?
내 속의 아주머니가 물었다, 무심하게 살지 그랬니?
내 속의 아가씨가 물었다. 연애를 세기말처럼 하기도 했어?
내 속의 계집애가 물었다. 파꽃처럼 아린 나비를 보러 시베리아로 간 적도 있었니?
내 속의 고아가 물었다. 어디 슬펐어?
그는 답했다, 노래하던 것들이 떠났어
그것들, 철새였거든 그 노래가 철새였거든
그러자 심장이 아팠어 한밤중에 쓰러졌고
하하하, 붉은 십자가를 가진 차 한 대가 왔어
소년처럼 갈 곳이 없어서
병원 뜰 앞에 앉아 낡은 뼈를 핥던
개의 고요한 눈을 바라보았어
간호사는 천진하게 말했지
병원이 있던 자리에는 죽은 사람보다 죽어가는 사람의 손을 붙들고 있었던 손들이 더 많대요 뼈만 남은 손을 감싸며 흐느끼던 손요
왜 나는 너에게 그 사이에 아무 기별을 넣지 못했을까?
인간이란 언제나 기별의 기척일 뿐이라서
누구에게든
누구를 위해서든
하지만
무언가, 언젠가, 있던 자리라는 건, 정말 고요한 연 같구나 중얼거리는 말을 다 들어주니
빙하기의 역에서
무언가, 언젠가, 있었던 자리의 얼음 위에서
우리는 오래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아이처럼
아이의 시간 속에서만 살고 싶은 것처럼 어린 낙과처럼
그리고 눈보라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악수를 나누었다
헤어졌다 헤어지기 전
내 속의 신생아가 물었다, 언제 다시 만나?
네 속의 노인이 답했다, 꽃다발을 든 네 입술이 어떤 사랑에 정직해질 때면
내 속의 태아는 답했다, 잘 가
잘 가. 그녀 없는 빙하기의 역에서 무심히 건네보는 작별인사. 이 해 이 계절도 몇 개의 장면으로 요약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