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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도

30년 전 오늘, 어두컴컴한 극장을 떠올린다. 그 어둠이 생의 마지막이 된 시인 기형도를 떠올린다. 오늘은 시인의 30주기. 이번 주는 내내 그의 시를 읽고 또 읽었다.

 

 

 

 

삽화:  『 입 속의 검은 잎 』  표지@ 문학과지성사

 

 

 

 

 

목요일인 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친구와 이런 저런 메시지를 주고 받다가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마침 읽고 있던 이 시가 문득 너무 나 같고, 너 같고, 온 지구에 사는 우리 같아서 잠시. 잠시. 그러면서 나는

 

 

 

 

 


자화상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꼭 80년 전 쓰여진 시인 윤동주의 이 시가 생각나고, 그러면서 또 나는

 

 

 

 

 

30년 전 오늘, 어두컴컴한 극장 한 켠에서 그보다 50년을 앞서 괴로워한 어느 시인의 마음을 그는 알고 있었는지

 

 

 

 

 

그런 것들이 실없이 궁금했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