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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분파워


밤보다 낮이 길어진다니 왠지 기운이 났다.



이상하지. 밤은 뭐고 낮은 뭘까. 생각들은 밤이면 우주처럼 끝없이 까마득하다가도 낮이면 소매 끝에 붙은 먼지처럼 한없이 사소하다. 이런 몸의 리듬이 긴 시간 진화한 결과인지 본능인지 오래 전부터 궁금했지만 아직도 모르겠다. 어쨌든 태양의 영향력만은 인정. 태양계 인증인가요, 지구인 인증인가요,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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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 출국 예정이었지만 아직 서울에 있다. 출국 재개 일정 역시 모른다. 왜냐하면 그건 바이러스만이 아는데→바이러스가 그런 걸 알 리가 없으니→결국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이런저런 고민이 되지만 답이 없다는 것만 답인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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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의 유행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생활패턴이 이렇게까지 바뀌는 정도라니. 기억하는 한 처음 겪는 일이다. 많은 나라의 국경이 막히고, 교통이 마비되었으며, 기관과 상점이 문을 닫고, 학교는 물론 회사도 가지 못한다. 학교도 회사도 가지 않는 나 역시 마찬가지다. 운동을 하자고 마음 먹었더니 센터가 쉬고, 그림을 보러 가자고 마음 먹었더니 미술관이 문을 닫았다. 친구들과 오랜만의 약속도 맥없이 미뤄지고, 자주 가던 영화관마저 문을 닫았는데 언제 다시 열게 될지 기약이 없다. 무엇보다도 아직 떠나지 못한 나. 두 발이 무릎 높이쯤 붕 뜬 채 생활하는 느낌이다. 살아가는 집중력을 조금 잃었지만 무섭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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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무서운 것은 민낯이 드러나는 일이다. 저 밑에 웅크리고 있다가 인종 사이로 혹은 국가나 지역, 계층 사이로 비죽비죽. 위기의 순간에 새어 나오는 혐오. 극한의 상황에 폭주하는 혐오. 거리의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생필품이 동이 나는 비현실적인 일상보다도 나는 이것이 무섭다. 이때다 싶어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고 담을 쌓는 일이 공공연해지는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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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모두가 그랬다면 지구는 진작 망했을 텐데 아직까지는 세이프. 나는 그것이 연대에서 비롯된 희망이라고 믿는다. 위기의 순간, 극한의 상황에서 혐오가 아닌 연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커피를 마시며 보낸 어제, 구름이 예쁜 하늘을 보고 두근대며 사진을 찍어 집으로 돌아온 오늘은 그래서 가능했다. 지금 이렇게 무릎 높이의 일상이나마 누릴 수 있는 것도 누군가 기꺼이 자처한 허리, 가슴, 어쩌면 머리 끝까지 붕 떠버린 일상 덕분인 것이다. 마음 깊이 느끼는 감사와 존경과 응원이 묵묵히 자기 몫을 버텨내는 모든 이에게 전해지기를. 그러니 이제 길어지는 낮의 길이만큼 조금씩 기운찬 일상을 기대해도 좋은 걸까, 그렇게 될까. 내일은











즐거운 이야기를 듣고 싶다.


즐거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





↖ 춘분파워 ↗